방송국 스튜디오
자유게시판
-
동백은 하 피지 않았더라
17
hans_(@syhan55)2011-04-26 17:12:44
車대가리를 돌려, 고운 물에서 금이 난다는, 麗水로 간다마는, 初入부터 어지럽다. 주말에다 만국박람회 행사준비 때문인가, 도로 공사에다 밀리는 차량, 공장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이름자와는 사뭇 다른 정경에 마음 어수선하다. 오동도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爛漫한 꽃무리 속에 울긋불긋한 사람들의 옷빛깔이 뒤섞일 때 비로소 봄놀이의 흥취가 날 법도 하련만, 여기에도 동백꽃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적게 피었다. 섬모양이 오동잎사귀를 닮아서 梧桐道라 하였다 하기도 하거니와, 이름대로 예전에는 오동나무가 많았으나 이젠 지천에 늘린게 동백이라더니, 내 눈엔 대나무숲이 더 많은 것 같더라.壬亂 때 李舜臣 장군이 이 섬 시누대를 잘라서 화살을 만들어, 한 때는 대섬이라고 불렀다는 얘기와 無關하지 않을 터.그래도, 어제, 바람은 세찼건만 팔 백리 남해섬가를 따라 돌면서 바라본 풍치도 좋았지만, 閑麗水道의 첫머리라 불리는 이 곳 바다 風光은 잠시 뒤에 간 靈龜庵에서 바라본 것과 함께 마음 속에 그림처럼 담겼다.정녕, 여기에선 봄소식이 땅에서 보담 바다에서 먼저 오는듯하다. 본디 靈龜庵이라 하여야 하거늘 다들 向日庵이라 부른다 한다.길 안내판에도 向日庵이라 적혀 있다. 日帝時代에 '日本을 바라보자'는 뜻으로 그 이름을 짓고 강요하다 보니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라 한다.또는 日出을 보는 곳이라 하여 그리 이름을 지었다 하기도 하더라만.섣달 그믐만 되면, 언제적부터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나 어중이떠중이들 元旦 떠오르는 해를 본답시고 밤을 도와 길을 나서 바닷가마다 난장을 벌인지 몇 해가 되었다.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倭놈들 과 같지 아니하거늘, 母係로든 父係로든 쪽바리 피가 섞이어 본능적으로 그리 하는 것인지 아니면, 天皇陛下萬歲를 부르고 東쪽을 향하여 揖하던 植民地 노예 근성이 남아서인지, 또 아니면 화이트데이니 블랙데이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작자가 만든 순전히 상업적인 푸닥거리에 혹하여 남 장에 가니깐 거름 지고 털커덩거리며 생각없이 따라 나서는 것인지. 누군가 새로운 문화가 어떻고 시류가 어떻고 하면서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얼러맞추던 말든. 석굴암 아침 景이란 것도 柳宗悅 以後 日帝가 皇民을 만들기 위하여 老獪하게 수작을 부린 방편 가운데 하나라 하지 않는가.얼마나 철두철미하였던지, 우리 뼛속 깊이 백혀, 光復후 초등학교 국어책에도 그 곳 일출의 찬함을 상찬하는 글이 실리고, 노래로도 부르고, 수학여행을 가면 새벽에 일어나 토함산에 오르는 것이 일정에 들어있지 않았던가. 寡聞 탓인가, 예로부터, 대보름이나 한가위에 달을 보고 祈福하는 풍습은 있어도, 정월 초하룻날 남녀노소가 바닷가에 엉머구리떼처럼 몰려와 日出을 보며 법석을 떨어댄다는 것은 들은 바 없다.하는 짓거리들이 日章旗를 향하여 일동 경례! 하는듯한 욕지기를 느낌은 너무 지나친 걸까. 전날 보리암을 오르내리면서 용을 쓴 탓인지 종아리가 탱탱 부어오른 탓도 있지만, 조금 더 올라가나 더 내려가나, 내려다보는 거기 바다는 똑 같은 바다, 맴만 족하면 되지,
부처를 볼랴하면 몰라도, 중창불사랍시고 요즘 가는 곳마다 다 그만만한 새 절집 모양이나 볼 양이면, 힘들여 가파른 길 오른다는 것 부터 부질없는 일이라, 암자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내려, 바다, 푸른 비로도처럼 부드러운 봄바다만 보다 도로 내려왔다.
麗水市場안 칠공주네집에서 점심을 하였다. 바다장어 구이와 탕---먹을만 하였다. 국도와 지방도를 타고 운주사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휑덩그레한 골짜기--- 예저기에 千佛千塔이 朝鮮初까지는 있었다는데, 먼 대서양 조그만 이스트 섬 石像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돌 깨는 소리 홀연히 사라지고 제멋대로 자란 나무와 풀과 돌 서리 내팽개치듯 자리하여 바람과 비에 딿고 이끼가
끼는 세월을 상상속에만 그려 진저리치듯 전율이 온다. 요샛 사람들은 무엇이든 예전대로 그냥 두는 법이 없다. 재화를 교환조건으로 하는 그럴듯한 이름을 내걸고, 편의를 앞세워 잔내비 손바닥만도 못한 소견머리와 재주로 뜯어고쳐 놓는다. 여긴들 예외가 없다.천불천탑이 아니라 이젠, 다듬고 다듬어 놓은 터 위에다 百佛百搭도 남아 있지 않은 이 곳에서는 마침내 눈을 감고서야 머리속으로 그 옛날의 황량한 풍경속에서 맞닥뜨리는 경이감을 숨막히도록 느낄 뿐이라는 게 안타깝다. 臥佛을 보려고 산등성이에 올랐다. 본시 누워있는 佛이 아니라 서 있어야 한다나. 천지개벽할 때 아니 그 臥佛이 일어설 때 천지개벽한다는 얘기도 있다. 잠시나마 곁에 누워보고 싶을 만큼 평안하고 자비로운 모습이였다. 아니, 몹시 피곤한 탓이였는지도 모른다.ㅎㅎ 아래로 내려와 찻집에서 雙花湯을 시켰더니, 金山寺에서 마셨던 것과는 견줄바 아니었다. 지난 해 그 절에선 주차비커녕 입장료도 받지 아니하고 누구든 쉬이 들고날 수 있도록 열어 두었으니, 찻집 쥔인들 건성으로 시늉만 낸 것으로 내어놓을 삿된 마음 한 조각이라도 있을까나.
李蘭影과 관련한 모임이 있어 木浦로 가는 길은 다 가질 못하고, 羅州에서 멈췄다..洗車를 시켜 놓고, 기둘리는 동안 앉아 있었던 던킨도너츠 집 쥔이 하는 말이 木浦까지 十五分 거리라는데, 생각하다 더 가지 않기로 했다. 한 발짝도 더 내닫기 싫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 오늘은 여기 머무르기로 작정하였다. 여기, 南道엘 와서 밥상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음식이든 맛은 차치하고서라도 항시 무엔지 모르게 푸근하고 넉넉하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 나주곰탕도 예외는 아니었다.
느끼는 것은 맛은 차치하고서라도 넉넉함과 푸근함과 풍성하다는 것이다.
댓글 0
(0 / 1000자)
- 쪽지보내기
- 로그방문

브라우저 크기를 조정해 주시거나
PC 환경에서 사용해 주세요.

개
젤리 담아 보내기 개
로즈 담아 보내기 개





하우스 (LV.3)








































0
0

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