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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hans_(@syhan55)
    2011-04-10 06:36:27
전날 삼천포에서 남해 창선도로 건너가는 다리의 정확한 이름을 알까하여 전화를 넣었던 후배와 오륙년만에 만나 어탕으로 점심을 하고, 한 해에도 몇 차례, 여태껏 숱한 진주행이 있었지만, 삼십여 년전 군입대 전전날, 처음 거기 땅을 밟았을 때 가본 뒤론 진주성과 마찬가지로 생각조차 없었던 진양호엘 갔더니 몸이 휘둘릴 정도로 세찬 왜바람 속에 일행은 우리 뿐, 그때와 마찬가지로 너른 호수는 예대론데 시퍼른 물은 선뜻하다. 종잡을 수 없이 휘청거리던 젊음에 결별을 고하는 여행의 마지막 장소였던 진주는 당시만 하여도, 나즈막한 건물들과 한낮인데도 거리는 자동차도 별반 눈에 띄질 않고 사람의 발걸음도 거의 없는 조용한 도시였고, 물길도 시원치않은 남강가에 한국전쟁 이후에 새로 지었다 하나 퇴락한 촉석루와 의암과 논개 사당이 있고 진주성이라 하니 진주성인가보다 여긴, 동네 가운데 숲으로 우거진 나즈막한 산이라, 누구든 무시로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이었더니, 늦은 봄 그 어느 날 나른한 오후에는 나처럼 뜻없이 헤매도는 이도 없더라만.이젠 새로이 에두른 성벽과 고층누각처럼 세운 출입문 따위 말끔하게 다듬어놓은 외양이 낯설고, 겉볼안이라 들어가본들 여느 명승지와 다를 바 없이 깨끗하게 면도를 한 얼굴처럼 말쑥하기야 하겠지만, 언뜻 떠올린 옛생각의 자취가, 비록 서글퍼고 맥없이 비루한 것이라 할지라도 정갈 데 없으니 하릴없다.
 
죽방렴을 보려고, 창선 다리목에 섰더니, 여전히 바람이 세차다.해안도로는 한산하다.물건리에 가서 방풍어유림을 구경하고
돌아나와 금산 보리암에 올랐다. 귀가 얼얼하도록 세찬 바람을 맞다가, 절에 들어서니 바람 한 점 없이 양광이 따사롭다가
산문을 나서니 또 찬 람. 부처님의 자비 때문인지 이 곳에 절집을 앉힌 선인의 지혜로운 안목때문인지는 모르나 별다른 느낌이었다.그에 비하면 매표소에서 절까지 오르는 길은 맨 흙이 아니라 무엇을 깔았는지 매끄러워서 걸음 딛기가 쉽지를 않아서
며칠동안 종아리가 아리고 쓰렸다. 진정 절로 가는 길이 절로절로 쉬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닐진대, 요즘 절마다 너무나 쉽게  부처님 자리 밑까지 자동차가 쑥쑥 들어갈 수 있도록 시원하게 길을 뚫어 놓는 추세를 비켜 가려는 게 아니라, 새로이 불상을 세우고 집을 짓고 한 걸 보면,  한다고 하긴 하였는데, 아니함만 못하단 생각이 들었다.
남해섬의 해안을 따라 도는 풍광은 아름다웠다.지난 겨울이 너무 혹독하게 추웠던 탓인가, 아직 동백꽃 아니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지도 않았건만, 동해안처럼 바다쪽으로 펜션이니 모텔이니 횟집 따위가 어지러이 시야를 가로막고 어지럽히는 곳도 드물고,  다랑이논이나 납작한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은, 퍽으나 이채롭고 아담스러워 보이긴 하였으나, 마음 한 켠에는
거기 사는 이들의 艱苦한, 그러나 바지런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을 본듯 쨍하였다.
 
망덕포구는 여전히 쓸쓸하였다.윤동주의 바람과 별과 시의 원고가 숨겨져 있었다는 예전 술도가는 거기 한켠에 잊어진듯 어둠 속에 또다시 버려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그 옆 횟집에서는 시절음식을 찾아 벚굴 굽는 이 하나 없다. 바람 소리만 남았다.
 
어두운 길을 되돌려나와 광양엘 와서 불고기로 늦은 저녁.유년시절 기억 속의 너비아니같으려니 상상을 하였더니, 아니었다.
달다레한 맛이 도는 엷게 저민 고기--- 깊은 맛은 없으나, 그런대로 먹을만 하였다. 마침내 하룻밤 몸을 의탁하려 들른
모텔에선 수부에서 이상한 몰골 탓인지, 월세방을 얻으려 왔느냐고 되묻는다. 그래도 하룻밤 숙박비로만 따진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도 참한 가격이었다.
 
**
지난 달 떠났던 남행길, 첫날 얘기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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